이 글은 신이 존재하고 기독교가 사실일 확률이 100%라고 주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 걸 증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내가 신이 존재하고 기독교가 사실일 확률이 0%보다는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들을 제시하기 위해 썼다. 그 확률이 1%로 느껴지든 50%로 느껴지든 99%로 느껴지든, 100%에 모자란 나머지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채워야 한다. 그 믿음은 어떤 증거와 논리를 갖고도 누군가가 당신에게 줄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1. 예수 부활 사건
약 2천년 전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기존의 종교적 관습을 버리고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믿으며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장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는 당시 부활한 예수를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이 수도 없이 많다.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의 기록들이 있고, 또는 동시에 500명이 예수를 만났다는 기록도 있다. 예수를 위협으로 여긴 정치권력은 이를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처형하려 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이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에 위협이 되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 난 그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믿어달라고 했던 주장의 진정성을 믿는다.
1-1. 예수가 실제로 부활하진 않았더라도 극단적 심리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이를 서로 공유하게 되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믿게 되고 그렇게 증언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증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봤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고, 예수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에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이 가설의 문제는 그 정도의 인원이 그 정도로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나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처형될 때 두려움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을 정도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갑자기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강한 믿음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믿고 증언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낮아진다.
1-2. 상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건 신이 없다고 가정해야만 성립하는 말이다. 만약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생각해보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장을 과학적 경험주의에 근거하여 반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3. 예수 부활 사건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언뜻 보기에 신빙성이 낮아보인다. 네 복음서에서 말하는 사건의 순서나 세부사항, 목격자의 이름 등이 서로 다르고, 이것은 일부 기록이 다른 기록을 참고하여 쓴 것이라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하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오히려 역사적 기록으로서 사복음서의 신빙성을 매우 강화해주는 요소라고 말한다. 굳이 예수의 부활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극단적 사건들의 당사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은 서로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만약 모두가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을 조작이나 공모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참고로, 이와 관련해서는 리 스트로벨의 '예수는 역사다' 라는 책으로 자세히 알 수 있다. 기독교에 빠진 아내를 구하려고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부활 사건의 역사적 타당성을 의학, 역사학, 심리학, 고고학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검수를 거쳐 검증한 책이다. 참고로 집필과정의 결과로 저자는 자신이 모은 증거들을 통해 예수의 부활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2. 예수에 대한 사랑과 존경
이 항목은 가치판단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공감되지 않는 사람은 넘어가도 좋다.
만약 예수가 정말 부활했더라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내가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내가 기독교를 믿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건 그저 신기한 미스테리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삶은 인류가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고, 오늘날까지 인류의 도덕의 근간이 되는 가르침을 전했으며, 그는 죽는 순간에도 자신을 못박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정도의 인격은 나와 같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동시에 기록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면모들을 통해 예수가 인간이라는 것도 믿게 되었다. 결국 나는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고 따르기로 했다.
2-1. 예수는 스스로가 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을 현혹하여 종교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행동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저런 행동은 자살행위다. 그래서 예수는 실제로 유대인에게 가장 무거운 죄인 신성모독, 또 로마인들에게 가장 무거운 죄인 내란음모죄가 모두 적용되어 극형(십자가)에 처해졌다. 대체 저렇게 지혜롭고 선한 자가 스스로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반사회적 행동을, 본인에게 아무 이익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텐데도 할만 한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이 사실이라서, 최소한 진심이어서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3. 객관적 도덕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말이다. 만약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이 없고 도덕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면,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과연 악하다고 할 수 있는가? 모두가 각자가 믿는 대로 살아가도 좋지 않은가? 내가 마약을 팔든, 다른 사람을 해치든, 테러를 저지르든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회 규범을 따라야 할 이유는 오직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인가?
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도덕과 선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것이 인간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사람마다 도덕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 각자 다르고,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틀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도덕은 상대적 도덕까지가 한계다. 그런데 상대적 도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놓고 '난 내 행동이 도덕적이라고 믿는다' 라고 스스로 변호해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절대적 도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격을 가진 정의로운 신이 없다면 그것은 보편적 가치가 없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절대적 도덕을 무시한 채 상대적 도덕만을 추구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며 도덕은 자신의 이익과 입맛에 맞게 활용해도 된다. 오직 절대적 도덕에 가치를 부여하는 (호구 같은) 인간에게만 그것이 가치를 지니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적 도덕이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인격을 가진 신이 절대적 도덕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인간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절대적 도덕은 누구에게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만약 당신이 폭력, 강간, 테러, 살인, 인종차별, 노예제도 등이 누군가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한다면, 또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친절한 것을 그것이 가치있다고 여기든 여기지 않든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어느 정도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3번 근거의 경우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절대적 도덕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도덕이 오로지 상대적이며 자신의 믿음과 양심에 충실한 테러리스트들 역시 도덕적이라고 믿는다면 3번을 무시해도 좋다.
4. 우주의 기원
우리 우주는 유한하다. 시작과 끝이 있다. 이것은 천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현대인에게는 자명한 과학적 사실이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우주가 영원하고 시공간은 무한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사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와 자연, 천지만물 그 자체를 신으로 생각하는 사상 (기독교의 신과 전혀 다름)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런 사상을 믿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인슈타인이 있다. 반면 기독교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고, 우주는 그저 신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현대 천문학은 우주가 무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하며 특정 시점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은 어떻게 발생한 걸까? 당연히, 우주를 시작한 근원을 우리 우주 안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논의를 우주 안으로 한정해버리면 그런 근원이 없다는 대답 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럼 우주 밖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과학은 우리 우주 밖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결국 우주는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모든 것이 생겨났든지, 우리 우주 밖에서 어떤 존재가 시작했든지 둘 중 하나다.
4-1. 이런 의견에 대해서 간혹 '우주를 신이 만들었다고 치자. 그럼 신은 누가 만들었어?' 라는 이상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기독교의 신은 누가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스스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은 문장 자체가 성립을 안한다. '그럼 우주도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아? 빅뱅은 무로부터 우주가 스스로를 창조한 사건 아닐까?' 에 대해서는, 우주가 만약 스스로 존재하는 무한동력과 같은 존재라면 언젠가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 우주 내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보니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반드시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 우주까지만 해당되는 법칙이다. 그래서 우주는 누군가가 만들었어야 하는 거고, 우주를 만든 자는 누군가가 만들어줄 필요가 없는 거다. 둘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4-2. 많은 이들이 종교와 과학이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라는 착각을 갖고 있다. 이런 얘기는 비유하자면 '스티브 잡스의 인생사와 아이폰의 작동 방식이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종교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행복하고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해주고, 과학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과 규칙들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 중 성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문자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강요하는 사람들 때문에 종교와 과학이 대립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되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극소수지만 지구가 6천년 전 해와 달 이전에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기는 하다. 하지만 카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의 절대다수는 성경이 해석이 필요하며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가령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 주장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을 기각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이것이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해석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맞을까 틀릴까'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지고, 이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중요해진다.
5. 인간과 사랑의 가치
상황을 하나 상상해보자. 어떤 무고하고 억울한 사형수 형제가 내일 사형당할 예정이다. 형이 동생에게 울면서 자신이 먹을 음식을 나눠주고 이거라도 맛있게 먹고 가라는 선행을 베풀었다. 이 일은 둘을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한채 내일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다. 과연 이 선행과 이들이 느꼈을 감정은 가치있는가?
만약 인간의 우정, 사랑, 이타심 등이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명체의 활동과 진화 과정에 도움을 주는 기능에 불과하다면, 이 두 사람이 느꼈을 감정은 인류의 유전자 보존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으므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정, 사랑, 이타심 같은 추상적 가치는 (마치 신처럼) 인간이 고도로 진화하면서 믿게 된 허상일 뿐이고, 더 나아가 인간은 유전자 보존의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로서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인간의 말, 행동, 감정이 어떠한 추상적 가치와 실체를 가진다고 믿는다면, 과연 그것이 어디에서 왔을지를 생각해보자. 오로지 우주와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의 구성만으로 과연 우정, 사랑, 이타심과 같은 추상적 가치가 생겨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추상적 가치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질세계에 국한되지 않는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고 본다.
6. 생명의 가능성과 기원
우주에는 여러 상수들이 존재한다. 전자 하나의 전하,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비, 중력 상수, 강한 핵력 상수, 약한 핵력의 강도, 우주 상수, 중성자와 양성자간 질량차 등. 이런 수치들은 우리 우주에서 특정한 값으로 정해져있는데,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미세하게나마 바뀐다면 우주와 생명의 탄생은 불가능했다. 이것을 보고 스티븐 호킹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법칙들은 여러 가지 수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수치들이 생명의 발현을 가능하게 하도록 매우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대해 유일하게 불가해한 점은 그것이 이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라는 말을 남겼고, 리차드 파인만 역시 우리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수학과 물리 이론이 현실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놀라워했다.
이들은 모두 종교가 없으나, 우주와 생명의 존재가 믿기 힘든 정도의 기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간혹 "만약 우주상수가 달랐더라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우주상수는 지금과 같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여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신을 안믿더라도 이런 얘기는 안했으면 좋겠다. 이게 필연적인 거라면 저런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이것을 왜 신비롭다고 여기겠는가? 모든 게 우연이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우주 이전에 어떤 존재가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결과일 것이다.
6-1. 아무리 우주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원소들과 무기물로 이루어져있던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인간의 DNA 구조는 책 1만 권 분량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인 미코플라스마의 DNA 구조는 책 두 권 분량의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원시 지구에서 최초의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스스로 생존하며 번식하는 생명체가 되기까지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현재 우주에는 생명체를 제외하고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물질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생명이 탄생한 이후의 과정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생명이 탄생하게 된 경위는 현대과학이 전혀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화학자들은 생명체가 없는 곳에서 자연현상을 통해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몰라도 그 과정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말은, 마치 원숭이가 키보드를 무작위적으로 누르다 보면 그 결과물로 우연히 '햄릿'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우연으로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아무도 '햄릿'을 보고 원숭이가 키보드를 무작위적으로 치다가 우연히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한다. 누군가 더 고등한 존재가 창작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생명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우연히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은데 그 일이 일어났다면, 사실은 그것이 우연이 아닐 확률이 아주 높다.
7. 결론
요약하자면, 기독교가 거짓말이고 신이 없다는 말은, 1) 2천년 전 중동에서 수천명이 갑자기 '예수가 부활했다' 라는 허황된 믿음 때문에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기 시작했으며, 2) 당사자인 예수 역시 자신이 신이라는 반사회적 주장을 함으로써 정치권력의 반감을 사 스스로의 무덤을 판 어리석은 자고, 3)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도덕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4)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모든 것이 이유 없이 갑자기 나타난 공간인데 스스로를 창조할 능력은 없어서 언젠가 소멸할 운명인데다가, 5)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실체나 가치가 없으며 그저 단백질과 전기신호로 구성된 화학 반응에 불과하고, 6) 우주와 생명은 극히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우연히 인간이 만들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고, 아무 유기물이 없던 원시 지구에서 0에 가까운 확률로 생명이 탄생해서 이렇게 진화했다는 뜻이다. 물론 누군가는 1) - 6)에 모두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렇게는 못믿겠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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